Peppermint




살아있는 작가의 팬으로서의 메리트라고 할까.

잊고 지내다가 가끔 신간이 나오면 기대치 않던 선물을 받는 기분이다.

'뭘 이런걸 다..' 하는 기분으로 천천히 읽어 내려간다.

물론 언제나 그러하듯 속도가 붙어 하룻밤 사이에 모두 읽어 버리지만..


책을 펼치고 1권의 채 절반도 지나지 않아 익숙한 소재들이 여기저기서 튀어 나온다.

무덤덤하고 핸섬하진 않지만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주인공, 갑자기 떠나가는 아내,

완벽에 가깝지만 어딘가 비밀을 감춘 사나이, 신비한 소녀, 우물, 고양이 그리고 음악과 파스타.

이 정도면 너무 노골적이다 싶을 정도로 하루키적인데.. 읽는 내내 식상한 기분이 든다.

분명 익숙한 문체 덕에 술술 읽히기는 하지만..

이 소설은 하루키의 매우 충실한 팬이 쓴 모작같이 느껴졌다.


1. 평면적인 등장인물

 주인공은 특유의 매력이 더욱 옅어진 애매모호하고 수동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무언간를 감추고 있는 완벽한 남자'인 맨시키는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탓인지

 설정과는 달리 매우 저렴해 보이는 이미지를 형성해 간다. 

 게다가 초반부터 고해성사를 하는 탓에 사실상 감추고 있는 비밀조차 없어

 후반부까지 캐릭터를 유지하는 것마저 힘겨워 보였다.

 완전히 유사한 캐릭터는 아니지만 해변의 카프카의 '오시마'와 비교해 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2. 실종된 묘사와 유머

 하루키 소설의 큰 한 축인 인물 묘사가 축소되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볼륨은 유지하고 있지만 은유가 힘을 잃은 듯 하다.

 덕분에 등장인물들이 생동감을 잃고 다급하게 이야기의 흐름에 휘말리는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반복되는 아키카와의 가슴과 관련된 조크는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3. 반복되는 소재

 입구와 출구, 관념적인 살인과 성관계, 상실과 극복 등 모두 한 번 이상 다루었던 소재였고

 특별히 이번 작품에 한해 한 차원 높은 경지가 열렸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되려 이 이야기를 위해 이 정도 분량(1,000P)이 과연 필요했을까 라는 생각은 든다.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멘시키와의 통화와 만남, 아키카와의 가슴과 관련된 묘사와 시덥잖은 농담,

 긴장감 없이 기능적으로 결말을 향해 전진하는 이야기 구성 등


하루키가 앞으로 어떤 책을 내더라도 어차피 구입하고 또 읽겠지만,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이 책은 반복해서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